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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양 철학사 20 : 피히테(1762~1814)
    서양철학사 2022. 1. 31.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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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히테

     

     

      독일의 철학자. 칸트 철학을 이어받아 이상주의적 철학인 주관적 관념론을 전개했다. 프랑스 나폴레옹 군이 독일을 점령하던 1807년 '독일 국민에게 고함'이라는 애국적인 연설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사행 : 내가 먼저인가, 사물이 먼저인가?

     

      과연 우리가 사물을 보는 것일까, 사물이 우리를 보는 것일까? 내가 먼저 앞장서서 사물을 보거나 사물을 작동시키는 것일까, 아니면 반대로 나보다 사물이 더 앞서는 것은 아닐까? 내가 먼저일까?, 사물이 먼저일까?

      다소 뚱딴지같은 질문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이런 질문을 던진 철학자가 있었다. 바로 칸트 철학을 계승한 요한 피히테다.

      피히테는 인간의 모든 인식과 행위를 체계화하는 일에 힘쓴 철학자다. 그는 이성의 구조를 논리화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자신의 학문이 모든 학문의 학문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피히테는 자신의 철학을 '지식학'이라고 불렀다. 이 지식학의 근간을 이루는 이론이 '사행(Tathandlung)'이라는 개념이다. 피히테는 사행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어떤 객체도 전제하지 않고 객체 그 자체를 낳는 행동, 즉 행위가 그대로 소산이 되는 활동이다."

      즉 자아를 통한 활동과 객체의 출현이 동시에 나타나는 사태를 '사행'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원래 피히테는 'A는 A다'라는 명제를 생각하다가, 판단하는 자아와 존재하는 자아가 같다는 결론을 이끌어 낸다. 여기에서 자아의 행위와 그 행위에서 비롯된 일이 동일하다는 생각이 탄생했는데 이런 발상을 표현하기 위해 '사행'이라는 단어들 만들어 냈다.

      보통 우리는 자아가 앞선다고 본다. 또한 그 자아를 바탕으로 활동한 결과, 어떤 객체가 생겨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피히테의 생각은 달랐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자아가 먼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피히테는 자아, 즉 '나'라는 개념의 특수성에서 사행이라는 개념을 떠올렸다. '나'라는 개념은 다른 사물과 달리 가리켜 드러낼 수 없다. 내가 나를 가리키는 그 순간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라, '그것'에 해당하는 객체가 되기 때문이다. 이른바 나를 지칭하는 행위가 나를 '그것'이 되도록 만든다.

      같은 맥락에서 사행은 주관과 객관이 하나가 되는, 경험 이전의 일종의 근원적인 개념이라고 말할 수 있다. 피히테가 주장하는 이 개념은 존재 원인이 자신에게 있는. 신에 대한 발상과 얼핏 흡사해 보인다. 그러나 피히테는 어디까지나 사행을 인간 의식의 문제로 포착했다.

      이제 사물과 나, 이 중에서 어느 것이 먼저인지에 대한 답이 나왔다. 피히테의 사행 개념을 전제로 한다면, 나와 사물은 어느 쪽이 먼저가 아니라, 동시에 발생한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자아와 비아 : 절대적 자아란?

     

      자아가 강하다는 말, 자아를 찾는다는 말을 들어 보았을 것이다. 이렇든 우리는 자아라는 단어를 자주 듣고 흔히 언급한다. 그런데 자아는 정확히 무엇을 의미할까? '자기 자신을 의미한다는 것 말고는 자아와 관련해 구체적인 설명이 떠오르지 않는다. 자아란 도대체 무엇일까? 이 질문에 답할 때 피헤테의 '자아' 그리고 자아와 대립하는 '비아' 개념을 떠올리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앞에서 이야기했듯 피히테는 지식을 기초로 삼으며 '지식학'이라는 자신의 독자적인 철학을 발전시켰다. 이 지식학에서 그는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 이 세 가지 원칙은 자아와 비아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논리를 전개해 나간다. 이 때문에 세 원칙을 통해 자아와 비아에 대해 더욱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지금부터 피히테가 말한 세 가지 원칙을 살펴보자. 먼저 제1원칙에 따르면 '자아는 자기 자신을 정립한다'고 한다. 즉 자아가 자기 자신의 존재를 낳는다는 의미다.

      인간은 사물과 달리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끄집어내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자기 자신과는 또 다른 영역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자아가 아닌, 자아와는 다른 별개의 존재다. 이를 '비아'라고 부른다.

      다음 제2원칙에서는 '자아에게는 비아가 반정립된다'고 말한다. 자아의 활동에 따라 비아가 생성되는 셈이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자아와 비아 사이에 모순과 갈등이 생겨나고 만다. 자아는 모든 것을 대상화해 나가는 행위인데, 그 자아의 행위가 비아를 낳았기 때문이다. 이 모순된 관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제3원칙이 등장한다. '자아는 나눌 수 있는 자아에게 나눌 수 있는 비아를 반정립한다.' 즉 자아를 한꺼번에 정립하는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만 정립해 나간다는 뜻이다. 나머지 부분은 비아로서 대립한다. 이렇듯 자아와 비아가 섞여 있기 때문에 자아와 비아를 서로 통합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피히테는 자기 자신만을 정립하는 유한한 자아가 비아의 저항과 부정을 제거하고, 절대적인 자아로 나아간다고 주장했다.

      바로 이것이 피히테가 명확히 밝힌 자아의 개념이다. 사실 피히테는 자아와 비아의 관계를 통해 역사 속에서 인류가 자유를 획득해 나다는 과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따라소 그가 발전시킨 지식학은 인간 정신의 실용적 역사라고도 일컬어진다.

      세 가지 원칙을 통해 '절대적 자아'를 주장하며 '자아'를 중심으로 논지를 전개한 피히테의 사상은 객관보다 주관을 우위에 둔 주관적 관념론에 가깝다고 평가받는다. 이후 피히테의 사상은 헤겔의 절대적 관념론으로 계승되며 독일 관념론의 초석을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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