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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맹자 (B.C.372 ~ B.C.289)
    동양철학사 2023. 2. 6.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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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자 (B.C.372 ~ B.C.289)

    맹자 (B.C.372 ~ B.C.289)

    맹자는 산둥성 추현 지방 출생으로 이름은 가, 자는 자여 또는 자거입니다. 세 살때에 아버지를 잃고 편모 슬하에서 성장했는데, 조숙했던 공자와는 달리 말썽꾸러기였습니다. 모방하려는 기질이 강하여 주변 지역의 풍습을 곧잘 흉내 냈기 때문에, 그 어머니가 세 번 이사를 다니며 가르쳤다고 하는 맹모삼천지교가 유명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열녀전>에 나온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맹자가 어렸을 때, 그 집은 공동묘지 근처에 있었습니다. 그가 노는 모양을 보니, 무덤을 만들고 발로 달공하는 흉내를 냈으므로 맹자 어머니는 아이를 기를 곳이 못 된다라고 생각하고 시장 근처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는 물건을 파는 장사꾼의 흉내를 자꾸 내서, 이에 맹모는 이곳도 아이를 교육할 만한 곳이 못 된다라고 하여 다시 학교 근처로 이사했습니다. 그러자 여기에서는 놀이를 하되, 제기를 차려놓고 어른에게 인사하고 겸손하며 양보하는 예를 다하는지라, 이때에야 비로소 맹모는 마음을 놓고 그곳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맹자의 어머니가 모성 교육의 사표로서 후세에 길이 빛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공자가 살았던 춘추 시대나 맹자가 생존했던 전국 시대는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기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적으로는 큰 의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때 제자백가라 불리는 많은 사상가들이 나왔는데, 가령 유가에도 도가, 묵가, 법가, 병가 등이 있었으며, 또한 황당무계하고 대담한 학설도 다양하게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학설에 대항하여 유가의 이름을 크게 떨친 인물이 맹자였습니다.

     

    맹자는 열심히 공부한 후, 노나라의 수고인 취푸로 가게 되었고, 공자의 손자인 자사의 문하에서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맹자는 공자가 태어난 곳에서 겨우 6리 정도 떨어진 가까운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일찍이 그를 흠모했고 그와 같은 성인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고 합니다. 얼마 후 맹자는 말타기를 배우다가 넘어져 팔을 다쳤는데, 마침 어머니와 헤어진 지도 오래되고 하여 고향으로 갔습니다. 그때 길쌈을 하던 맹모가 물었습니다.

    "너의 공부가 얼마나 성취되었느냐?" 이에 맹자가 "별로 나아진 바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맹모는 칼을 들어 길쌈하던 것을 끊으며 "네가 공부를 하다가 중단하는 것은 마치 내가 이 칼로 여태까지 애써던 짜던 이 길쌈을 끊는 것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맹자는 크게 깨닫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아침 저녁으로 부지런히 쉼없이 공부하였습니다. 이것을 맹모의 단기지교라고 합니다.

     

    그는 공자의 손자이기도 하고 중자의 제자이기도 한 자사의 문하에서 정통적인 유학을 배웠고, 수많은 제자들과 더불어 여러 나라를 주유하며 유가의 이상을 달성하고자 했습니다. 마흔 살을 전후로 추나라의 벼슬길에 올랐으나, 혼란한 세태에 실망한 채 물러나고 말았습니다. 그가 수백 명의 제자와 함께 수십 대의 수레를 이끌고 이동할 때는 일대장관을 이뤘으며, 용기가 넘치고 기질이 강했던 그는 여러 왕들에게 이상 정치를 실시하도록 강력히 권고하기도 했습니다. 여든네 살까지 제자들과 함께 공부했고, 자신의 이상을 전하기 위해 <맹자>를 일곱 편까지 썼습니다.

    성선설

    맹자는 인산의 본성이 선하다고 주장합니다. 인간의 천성은 물이 항상 아래로 흐르긋이, 오직 선한 것만을 따릅니다.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 올바른 길을 가기 위해서는 자기 마음 속에 들어 있는 것을 이끌어 내기만 하면 되며, 현자의 모범적인 삶을 따로 배울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자기 마음 속에서 속삭이는 착한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인간의 모든 잘못이나 죄는 밖에서 사람을 옭아매는 사회제도가 불완전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자들의 잘못에서 비롯됩니다.

     

    맹자는 성선설의 근거로 다음과 같은 예를 듭니다.

    "인간은 누구나 남의 고통을 차마 보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가령 한 어린 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갑자기 보았다고 하자. 그러면 누구나 깜짝 놀라서 건지려고 할 것이다. 그것은 어린 아이의 부모와 잘 사귀어 보여고 하기 때문도 아니고, 동네 사람들과 친구들로부터 칭찬을 받으려고 하기 때문도 아니며, 그 아이의 지르는 소리가 거북해서 그러는 것도 아니다. 이렇듯 측은한 마음이 없으면 인간이 아니니..."

     

    이러한 맥락에서 맹자는 인간에게 다은 4가지의 '착함의 처음'이 있다고 말합니다.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은 어짊의 시작이요,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의로움의 시작이요, 사양하는 마음은 예절의 시작이요,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은 지혜의 시작이다."

    이를 다시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누구나 다른 사람의 고통을 보면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이 생기는데, 이것은 모든 사람이 선천적으로 어질다고 하는 증거입니다. 둘째, 누구나 자기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는 부끄러워 하는 마음이 있는데, 이것은 모든 사람이 선천적으로 의롭다고 하는 증거입니다. 셋째, 사람은 누가나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데, 이것은 모든 사람이 선천적으로 예의바라고 하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넷째, 누구나 어떤 일이 옳은지 그른지는 판단할 수 있는데, 이것은 모든 사람이 선천적으로 지혜롭다고 하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모두 이처럼 타고난 본성대로 행동하면 누구나 착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래 착한 인간의 마음일지라도 불의 불씨나 물의 샘 줄기와 같아서 그것을 바르게 잘 이끌면 요원의 불길이나 큰 강이 될 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꺼지거나 말라버리기 쉽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누구든지 선하게 될 수도 있고 악하게 될 수도 있는 양면성을 지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인간의 선한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우리는 끊임없이 수양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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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동심 & 호연지기

    맹자는 우리가 착한 본성의 씨앗을 잘 보존하고 널리 키워나가는 방법으로, 존심양성의 수양법을 제시합니다. 이에 밖에서부터 찾아오는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인 부동심에 도달할 것을 말합니다.

    이를 위해 맹자는 먼저 참된 용기를 길러야 한다고 말합니다. 참된 용기란, 만용과 비겁의 중용입니다. 이는 스스로 반성해봐서, 자신을 의롭지 않다고 여기면 아무리 헐렁헐렁한 옷을 입은 사람일지라도 그에게 겁을 내게 되고,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면 설사 천만 명의 사람일지라도 그들에게 겁을 내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바로 이러한 용기에 의해 부동심이 길러집니다.

     

    둘째, 우리가 부동심을 얻기 위해서는 호연지기를 길러야 합니다. 호연지기한 지극히 크고, 지극히 강한 것입니다. 손상시키지 않고 곧게 키우면 천지 사이에 꽉 차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겉으로만 의리에 맞는 행동을 취했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내면적으로 의리를 쌓도록 노력해야 하며, 그러한 노력을 잠시하도 중단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항상 마음 속에 지니고 잊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한편 그것은 억지로 조장해서도 안 됩니다. 송나라의 어떤 사람은 자기 논에 심은 모가 잘 자라지 않는 것을 걱정하여, 한 뿌리 한 뿌리씩 손으로 잡아 뽑아서 올려주었습니다. 그리고 피곤한 모습으로 집에 돌아와서는, "오늘 나는 논의 모가 빨리 자랄 수 있도록 돕느라 매우 혼이 났다."라고 했습니다. 이에 놀란 그의 아들이 달려가 보니, 논의 모들은 벌써 다 말라 죽어 있었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 기를 키우겠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이처럼 모를 억지로 뽑겠다고 하는 사람이 많다고 맹자는 지적했습니다.

     

    수양이 잘 된 사람은 절대로 물질에 대한 욕심에 유혹되어 도덕적 신념이 흔들리지도 않거니와 어떤 위협이나 곤란 아래에서도 인의의 행위 원칙을 저버리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아무리 부귀하여도 음탕한 데 빠지지 않으며, 아무리 빈천하여도 주체 없이 이리저리 움직이지 않으며, 아무리 무력으로 위협하더라도 굴복하지 않는다."라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돈이 많아지면 성적인 음란에 빠지고 술이나 도박에 취하기 십상인데, 도덕적으로 수양이 잘 된 사람은 결코 그런 일에 빠져들지 않는다. 또한 사람이 물질적으로 너무 가난해지면 자기도 모르게 비굴해져 줏대 없이 이리저리 흔들리게 마련이지만, 도덕적으로 수양이 잘 된 사람은 그러하지 않습니다. 아울러 웬만한 사람은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위함한 상황에서 무릎을 꿇기 십상이지만, 역시 도덕적으로 높은 경지에 오른 사람은 자기 생명을 버리면서까지 원칙을 지켜낼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가령 복권에 당첨되어 일확천금을 했다고 해서 흥청망청 쓰지도 않고, 비빌 언덕조차 없이 가난해졌다고 해도 끝까지 인간의 도리를 지켜나가며, 어떠한 위협에도 끄떡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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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도정치와 정전제도

    개인마다 스스로 수양을 잘해야 하겠지만, 한 나라가 백성을 잘 다스리는 일도 매우 중요합니다. 이에 맹자는 성선설을 바탕으로 개인의 도덕적 가치를 국가 사회에 실현하기 위한 실천 방안을 제시합니다. '사람의 본성은 어질기 때문에, 위정자는 인의로써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는 이른바 왕도정치가 그 정치론의 핵심입니다.

     

    왕도정치는 먼저 공리주의를 배격합니다. 맹자는 양 혜왕에게 공리주의의 폐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충고했습니다.

    "만약 임금께서 어떻게 하여 나라를 이롭게 할까 주장하신다면, 대부들도 어떻게 하여 내 집안을 이롭게 할까 하고 말할 것이며, 또 선비나 백성들도 어떻게 하여 나 자신을 이롭게 할까 하고 말할 것입니다. 이렇게 위아래가 서로 자기의 이익만을 얻기 위해 다투면 나라가 위태롭게 되고 말 것입니다."

    또한 신한 된 자가 자기 이익을 생각해서 임금을 섬기고, 자식된 자가 자기 이익을 생각해서 어버이를 섬기고, 동생된 자가 자기 이익을 생각하여 형을 섬긴다면, 그것은 인의가 아니라 이익 때문에 서로 만나는 것이 됩니다. 그러하면서도 멸망하지 않은 자는 지금까지 없었다고 맹자는 통렬히 비판합니다.

     

    둘째, 왕도정치는 백성들의 먹고 사는 문제, 즉 민생 문제를 해결해줘야 합니다. 왜냐하면 백성들은 항산이 있어야 항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현명한 왕들은 우선 백성들의 생산 능력을 안정시켜 위로는 부모를 봉양할 수 있게 해주고, 아래로는 아내와 자녀들을 부양할 수 있게 해주며, 풍년에는 배불리 먹고, 흉년에는 굶어 죽지 않도록 해주었던 것입니다.

    맹자는 백성들의 생업을 보장해주기 위해 정전제도의 실시를 주장합니다. 이 제도는 여덟 집이 한 정이 되어 집집마다 100무의 토지를 받아 농사를 짓되, 한 가운데 있는 공전은 공동으로 경작하여 그 수확을 나라에 세금으로 바치도록 하는 것입니다. 맹자에 의하면, 5무 되는 집터 안에 뽕을 심고 누에를 치면 쉰의 늙은이도 모두 비단옷을 입을 수 있으며, 닭과 돼지를 길러 새끼 치는 것을 돌봐주면 일흔의 노인도 모두 고기를 먹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백성들에게는 생업을 보장해준 뒤에 비로소 도덕적인 생활로 이끌어야 하는 반면, 지도층에게는 생업에 좌우되지 않고 도덕적인 생활을 솔선수범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나라에서는 이들에게 먹고살 만큼의 녹봉을 주되, 그렇다고 정치 지도자들이 재산을 쌓아서도 안 되고 부와 사치와 음란을 누려서도 안 됩니다. 정치 지도자는 백성들에거 어질고 너그러운 정치를 베풀어야 합니다. 형벌을 줄여주고 세금을 가능한 적게 거두며, 모두 편안한 마음으로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정치의 궁극적 목표는 먹고 사는 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도덕적 가치를 충분히 발휘하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즉 백성이 효성과 공경, 우애와 진실, 신의와 도덕을 닦게 하여 살고 죽는 일에 유감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이러한 면에서, 맹자는 인의를 숭상하고 덕을 본위로 하는 왕도정치가 이익을 숭상하고 힘을 본위로 하는 패도정치보다 우월하다고 말합니다. 왕도정치의 최고 책임자라 할 수 있는 천자는 백성들의 신망을 받는 덕스러운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임금은 백성들의 신뢰를 받는 현자 가운데서, 선거에 의한 것이 아닌 선양에 의해 추대되어야 합니다. 사실 왕이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다시 세우는 세습제도나, 오늘날 국민들이 선거를 통해 지도자를 뽑는 방식에는 모두 문제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백성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거나 왜곡하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그보다는 차라리 덕스러운 사람을 추대해 왕으로 모시도록 하는 방식이 훨씬 바람직하다고 맹자는 본 것입니다. 이렇게 추대된 통치자는 자기 자신의 행복이 아니라 국민의 안녕과 복지를 위해 온 힘을 쏟아야 합니다.

     

    만일 막강한 힘을 가진 군주가 중대한 잘못을 저지를 경우에는 백성들이 이의를 제기할 수 있으며, 이에 귀를 귀울이지 않으면 다른 군주를 모셔올 수도 있습니다. 군주로서의 의무를 게을리 하여 백성들의 마음에서 멀어진 자는 왕위를 물러나게 해야 하고, 응하지 않을 경우에는 심지어 살해해도 좋습니다. 폭압 정치를 펴며 타락한 모습을 보이는 임금은 이미 임금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설령 그를 퇴위시키거나 죽인다 한들 신하 된 도리에 어긋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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