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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자(B.C.298?~B.C. 238?)
    동양철학사 2023. 2. 9.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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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자(B.C.298?~B.C. 238?)

    순자(B.C.298?~B.C. 238?)

    순자의 삶

    맹자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것으로 알려진 순자는 전국 시대 조나라의 유학자로서 이름은 황이며, 자는 경입니다. 맹자가 성선설에 입각하여 덕치주의를 주장했다면, 그는 성악설에 근거하여 예치주의를 주장했습니다. 진나라의 재상 이사와 한비자가 그의 제자입니다.

     

    순자는 어려서부터 고향의 서당에서 공부했는데, 열 다섯살쯤에는 그의 재능을 주위로부터 인정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제나라의 수도 직하로 유학을 갔는데, 당시 그곳은 학술 문화의 중심지로서 유가를 비롯한 도가·묵가·명가·법가 등의 학자들이 구름 같이 모여 들었습니다. 그러나 점차 세력을 키워 나가던 제나라에 대해 지켜보던 나라들이 힘을 합쳐 공격하기 시작하였고, 직하의 학자들도 사방으로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순자 역시 이때 초나라로 건너갔는데, 제나라가 다시 문화 진흥책을 쓸 무렵 직하로 돌아왔습니다. 원로 스승인 순자는 높은 대우를 받았으며, 제주라는 높은 벼슬을 세 번이나 지냈다고 합니다.

     

    그의 일생은 비교적 단순했고, 공자나 맹자처럼 여러 지방을 돌아다닌 적도 없었으며, 우여곡절도 많지 않았습니다. 일생의 전반기는 거의 서재에서 책을 보며 지냈고, 제나라에 갔던 쉰 살 무렵부터 겨우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모함을 받아 초나라로 돌아간 다음, 당시 법가 사상에 입각하여 군대를 정비하던 진나라의 범수에게 그의 철학을 설파하였으나 뜻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순자는 쉰세 살 되던 해에 마지막으로 초나라에 갔습니다. 때마침 이때는 춘신군이 초나라의 재상이었고 순자 또한 춘신군을 잘 알고 있었던 터라, 그는 난릉 지방의 현령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춘신군 앞에서 순자를 모함하자, 이 소식을 들은 순자는 당장 그 직책을 버리고 조나라로 돌아왔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춘신군은 그를 다시 모시고자 했고, 이에 순자는 한 통의 편지를 보내 초청을 거절했는데, 그 내용은 충신과 간신을 구별하지 못하는 춘신군의 어리석음을 비웃는 것입니다. 춘신군은 화가 났지만 순자는 당시 유명한 4대 공자 가운데 한 명이었기 때문에 다시 한 번 사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차마 뿌리치지 못하고 순자는 다시 난릉 지방으로 돌아가 현령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초나라 임금이 죽자 정변이 일어났고, 춘신군은 복병에 의해 살해되고 말았으며, 이에 춘신군의 지지를 박던 순자 역시 직을 물러나고 말았습니다. 물론 이때는 순자도 이미 반백의 늙은이가 되어 있었고, 또한 그의 마음도 두 번 다시 정치 무대에 나서 동분서주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는 난릉에 정착하여 살다가 그곳에 묻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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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이란 인위적인 것!

    사람은 타고날 때부터 본성이 악합니다. 예컨대 사람들은 이익을 좋아하고, 남을 시기하며, 귀에 아름다운 소리나 눈에 보기 좋은 색채를 좋아합니다. 만일 사람들을 이러한 선천적 본성에 따라 살아나게 내버려 둔다면 결국에는 서로 다투고 빼앗는 어지러운 사회가 무법천지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마땅히 스승의 가르침에 의해 감화를 받고 예의의 도를 배움으로써 비로소 서로 양보하게 되고, 안정된 사회를 이룩할 수 있습니다.

     

    성선설에서처럼 과연 사람이 선천적으로 선하여 가만히 놔두어도 스스로 선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라고 순자는 생각했습니다. 학문을 하는 것은 선천적 본성이 착해서가 아니라, 후천적이고 인위적인 노력에 의한 것입니다. 공부를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억지로 참고 인내하면서 하다 보니, 취미도 붙게 되고 신바람도 나는 것입니다. 또한 예의범절이라는 것도 높은 도덕성을 지닌 성인이 만들어낸 것으로, 학문을 통해 얻어진 결과입니다.

     

    둘째, 사람의 본성은 그대로 흘러가도록 놔두었을 경우 소박성에서 벗어나고, 타고난 본래의 선한 소질도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이러한 사정으로 보건대, 인간의 본성은 분명히 악합니다.

     

    셋째, 만일 사람의 본성이 착하다고 하며 성왕이 나타날 필요나 예의가 필요할 일이 없습니다. 결국 사람의 본성이 악하다 보니 그 본성을 뜯어 고치기 위해 군주는 권력으로 백성들에게 예의를 지키도록 명령하고, 법률로써 나라를 안정시키는 것입니다.

     

    넷째, 순자에 의하면 인간의 본성은 물론 악하기는 하지만, 후천적인 노력에 의해 그것을 어떻게 변화시키느냐에 따라 사람이 달라진다고 합니다. 여기에 성인과 도적이 갈라지고, 군자와 소인이 구별됩니다. 성인은 스스로 후천적으로 노력하여 그 본성을 선하게 한 경우이고, 도둑이나 소인들은 타고난 본성에 자신을 내맡김으로써 눈앞의 이익을 탐내게 된 경우입니다.

     

    맹자가 말하는 본성이란 인간의 이성을 가리키는 데 반해, 순자가 말하는 본성은 인간의 본능과 욕망을 가리킵니다. 다시 말해 순자가 말하는 인간의 본성이란 그의 표현대로 "배고프면 먹고 싶고, 추우면 따뜻하게 하고 싶고, 피로해지면 쉬고 싶다고 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맹자와 순자는 똑같이 교육이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다만 맹자는 타고난 선의 본성을 잘 보존하기 위해, 순자는 타고난 악의 본성을 고치기 위해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는 점에서 다를 뿐입니다.

    죽은자와 산 자

    순자는 죽은 사람을 석달 만에 장사지내되, 마치 살아 있는 사람처럼 꾸며서 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세상에 살아 있는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 아닌, 어디까지나 고인에 대한 사모하는 마음을 극진히 나타내기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가령 살아 있는 동안에는 후하게 대접하다가 그가 죽었다고 하여 대접을 소홀히 한다면, 이것은 간사하고 악한 인간들이나 할 짓이며, 마땅히 사람의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장례의 의식이 시체를 신중하게 땅에 묻는 것이라고 한다면, 제사의 의식은 죽은 자의 영혼을 신중히 섬기는 일입니다. 제사란 살아 있는 사람들의 망자를 추모하는 마음을 나타내는 방식이며, 따라서 그 예의 절차는 성대하게 해야 합니다. 군자는 이를 가리켜 사람의 지켜야 할 도리라 말하는데, 백성은 이를 두고 흔히 귀신 섬기는 일이라 부릅니다. 이와 관련하여 순자는 "죽은 사람 섬기기를 산 사람 섬기듯 하고, 이제는 가고 없는 사람을 눈 앞에 있는 사람처럼 섬겨야 한다."라고 주장합니다.

     

    물론 그의 주장 중 죽은 자의 시신을 석달만에 매장해야 한다고 한 것이나, 부모님의 상례를 3년 동안 치러야 한다는 것 등이 당시의 풍습에는 적용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가 강조하는 마음의 자세만큼은 여전히 의미가 있습니다.

     

    군자와 소인의 차이

    먼저, 군자는 도 얻는 것을 즐거워 하지만, 소인은 욕망 얻는 것을 즐거워 합니다. 세상의 이치를 배우고 깨닫는 데에서 가치를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저 먹고 마시고 즐기는 일에서 삶의 보람을 찾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이 군자와 소인의 첫 번째 차이입니다.

     

    둘째, 군자는 귀로는 음탕한 소리를 듣지 않고, 눈으로는 요사스러운 장면을 보지 않으며, 입으로는 사특하고 악한 말을 내지 않습니다. 반면에 소인배들은 음란하고 방탕한 말을 즐겨 내고 들으며, 또 더럽고 추한 꼴을 보고자 애쓰며, 간사하고 악독한 말을 함으로써 이웃을 괴롭힙니다.

     

    셋째, 군자는 누구나 쉽게 사귈 수 있지만 아무 허물없이 친하기는 어렵고, 쉽게 두려워하나 위협하기는 어렵습니다. 즉 군자는 교만하지 않아서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며, 누구나 가까이 다가갈 수는 있습니다. 그렇다고 함부로 허튼 소리를 해대는 사람마저 용납하지만 않습니다. 또 그를 만나면 어쩐지 마음이 경건해지고 심지어 불편해지기까지 하지만, 그렇다고 그를 협박하여 그 삶의 자세를 흐뜨러뜨릴 수는 없습니다.

     

    넷째, 군자는 환난을 항상 두려워하지만 의로운 죽음을 마다하지 않으며, 이익을 위해 그릇된 짓을 하지 않습니다. 즉 군자는 어려운 때를 대비하여 늘 처신을 조심하지만, 대의명분을 위해 죽어야 할 자리에서마저 목숨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물질이나 명예, 그리고 권력을 얻기 위해 불의한 방법을 쓰거나 불법한 일을 저지르지 않습니다.

     

    다섯째, 군자는 친하게 지내되 편당을 짓지 않으며, 변론을 하되 꾸미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즉 군자는 마음을 열어 누구와도 친밀하게 지내긴 하지만, 끼리끼리 몰려다니며 스스로 이익을 도모하지 않습니다. 또 군자는 자기가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에 자신의 입장을 스스로 밝히기는 하지만, 절대 거짓말을 꾸며내지는 않습니다.

     

    여섯째, 군자는 능하거나 능하지 않거나 간에 좋은 일만 하는데, 소인은 능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간에 나쁜 짓만 일삼습니다. 즉 군자는 자기에게 능력이 있을 때는 남을 너그럽게 용납하고 능력이 없을 때는 남을 섬기는 일에 쓰는 데 반해, 소인배들은 자기에게 능력이 있을 때는 오만방자하여 함부로 남을 무시하고 반대로 능력이 없을 때는 괜시레 남을 시기하여 사태를 나쁜 방향으로 몰아갑니다.

     

    일곱째, 군자는 주변 환경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습니다. 가령 그는 형편이 가난하다 하여 도의 실천을 게을리 하지 않는데, 이것은 마치 훌륭한 농부란 홍수나 가뭄을 겁내어 농사일을 포기하지 않은 것과 같으며, 훌륭한 상인이란 물건이 오랫동안 팔리지 않는다고 하여 가게 문을 쉬이 닫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여덟째, 군자 중 마음이 큰 사람은 하늘을 공경하여 그 법도에 따르고, 마음이 작은 사람은 의를 두려워하여 스스로 절도를 지킬 줄 압니다. 그러나 소인 중 마음이 큰 사람은 오만방자하고 난폭하게 굴며, 마음이 작은 사람은 음란하고 방탕하여 더욱 빗나가기만 합니다. 군자 중 지혜로운 사람은 온갖 세상일의 이치에 통달하고, 지혜가 다소 부족한 사람은 단정하고 진실하게 행동하여 법도를 지킵니다. 그러나 소인에게 지혜가 있으면 도둑질을 하고 사기를 치며 온갖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는 데 분주하고, 그레게 지혜가 없는 경우에는 공연히 남을 모함하여 함정에 빠드리려고 그야말로 발버둥을 칩니다.

     

    아홉째, 군자가 때를 만나 나랏일에 등용되면 공손하게 그 자리를 지키되, 출세의 때를 만나지 못하면 스스로 가다듬어 공경할 뿐 다른 사람이나 세상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소인배가 때를 만나면 약삭 빠르고 거만하여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하다가 결국에는 낭패를 보게 되며, 소인배가 때를 만나지 못하면 공연히 남을 원망할 뿐만 아니라 출세의 기회를 잡기 위해 쉼 없이 음흉한 일을 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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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은 정보의 대상!

    공자의 손자인 자사나 맹자는 하늘의 명령을 도덕의 최고 원리로 삼았으나, 순자에게 하늘은 어디까지나 자연적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물론 신이나 귀신도 그의 안중에는 없었습니다.

     

    가령 밤낮이 바뀐다거나 사계절이 변화하는 것은 모두 자연법칙에 따른 움직임일 뿐, 인간의 일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일식과 월식, 지진이나 폭풍우, 홍수나 가뭄 역시 자연에서 일어나는 현상일 뿐, 임금이 정치를 잘하든지 못하든지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아무리 임금이 정치를 잘해도 지진이 일어날 수 있으며, 폭군이 등장하여 아무리 백성을 괴롭힌다 해고 풍년이 들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늘이 요나 순 같은 어진 임금을 나게 하지도 않았으며, 걸주와 같은 폭군을 있게 하지도 않았습니다. 씨뿌리기에 좋도록 봄에 만들지도 않았고, 수확하기에 알맞도록 가을을 준비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순자는 "사람이 반드시 하늘을 정복해야 한다."라고 주장합니다. 앞에서 말한 대로, 하늘의 움직임과 인간의 일은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그러나 자연의 모든 현상은 어차피 인간 생활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므로 그 움직임을 잘 살펴 이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늘은 오직 자기의 법칙에 따라 운행되므로, 그 법칙을 미리 알아서 그것을 우리의 삶에 유리하도록 이용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여름의 숙성과 가을의 수확을 기대할 수 있으려면 마땅히 봄에 씨를 뿌려야 합니다. 또한 비가 내리지 않는 가뭄에 대비하기 위해서 저수지 시설을 정비해야 하고, 정반대로 비가 한꺼번에 내리는 홍수를 대비하기 위해서 물이 잘 빠지는 수로를 마련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늘은 사람의 형편을 기다려 주지도 않거니와 물이 부족한 농작물을 위해 특별히 단비를 내려주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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