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서양 철학사 23 : 쇼펜하우어(1788~1860)
    서양철학사 2022. 2. 3. 09:18
    728x90
    반응형
    SMALL

    쇼펜하우어

     

     

     

      독일의 철학자. 이성주의 철학의 흐름에 반기를 들고, 세계의 본질은 지성보다 맹목적인 생의 의지에 있다고 주장했다. 맹목적인 의지에 벗어나 자율성을 회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금욕주의와 불교 등의 동양 사상을 도입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의지와 표상 : 번뇌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인간은 고통과 번뇌를 안고 살아가야 할 숙명에 처해있다. 성공의 여신은 너무나 멀리 있다. 행복하게 살고 싶지만 정작 행복은 자신을 외면한다. 지옥 같은 삶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없을까? 아르투르 쇼펜하우어가 주장한 '의지' 개념은, 이 어두운 질문에 한 줄기 빛이 될 것이다.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의지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이성적인 의지와는 다르다. 쇼펜하우어의 의지는 이성과는 전혀 관계없이 신체 활동으로 나타나는 '생의 의지'를 뜻한다. 그는 생을 향한 의지가 세계를 실현하고, 그 세계는 주관적인 '표상(마음에 떠오르는 외적 대상의 이미지)'에 지나지 않는다고 맬했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의 바탕에는 근거도 목적도 없는 맹목적인 의지가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인간의 욕구는 채워도 채워지지 않을뿐더러, 채워지지 않는 만큼 생은 고통으로 가득 차게 된다. 대체 이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쇼펜하우어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처방전으로 먼제 이데아와 예술의 관계를 논한다. 이데아란 플라톤이 말한 이상 세계로, 쇼펜하우어는 예술은 시간이나 공간, 인과관계를 초월해 이데아를 직관할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음악은 이데아를 넘어 세계를 실현하는 '의지' 그 자체를 모사하고 있기 때문에 예술의 최고 형태라고 말할 수 있다.

      이처럼 예술은 인간으로부터 주관 혹은 객관이라는 두 요소를 제거해 주고, 의지와 욕망에서 비롯된 모든 고통에서 인간이 해방되도록 이끌어 준다. 그런데 문제는 예술을 통한 해탈이 아주 짧은 일시적인 해방이라는 사실이다.

      쇼펜하우어는 그 다음으로 '도덕'을 통한 해탈을 이야기한다. 그는 도덕을 통해 일시적인 해소가 아닌, 영구적인 해방을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인생 자체가 고통이라면, 나와 다른 타인의 인생도 늘 고통스러울 것이다. 이 사실을 마음에 깊이 새기고 고통에 공감하고 동정함으로써, 인간은 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다.

      물론 타인의 고통을 함께 하더라도 실제 타인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타인을 향한 일방적인 동정은 생존의 고통에서 궁극적으로 벗어나게 해주는 해탈이 아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타인의 고통을 자발적으로 함께함으로써 자신의 의지, 생을 향한 의지를 버리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죽을 수도 없고, 또 죽으라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생을 향한 의지를 버리기 위해 우리가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죽음이 아닌, 의지를 부정하기 위해 '금욕'하는 일이다. 여기에서 금욕이란 불교에서 종교적 체념을 통해 얻어지느 열반과 흡사하다. 요컨대 맹목적인 삶의 의지를 단념하고, 도덕을 통해 금욕적으로 의지를 부정하는 일이야말로 고통에서 벗어나는 궁극적인 처방전이다.

     

    동정 : 동정이란 무엇인가?

     

      동정, 연민이란 과연 어떤 감정일까? 철학의 세계에서 '동정'이라고 하면, 애덤 스미스의 사상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현대 경제학의 창시자로 일컬어지는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1790)의 동정 개념은 유명하다. 그는 자신의 주요 저서 중 하나인 [도덕 감정론]에서 동감, 혹은 공감을 언급했는데 타인의 마음을 살피고 공감하느 능력을 도덕적 행위의 근거로 삼았다. 애덤 스미스는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이 동정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사회 질서가 형성된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쇼펜하우어가 이야기한 동정은 타인에 대한 공감 중에서도 특히 고통에 공감하는 '동고'의 의미로, 타인의 고통을 함께한다는 뜻이다.

      쇼펜하우어가 제시한 인생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에서 타인의 고통에 대한 동정은 그가 궁극적으로 지향한 맹목적인 의지와 부정, 바로 전 단계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덕에 바탕을 둔 해탈을 언급했다. 동정을 통해 타인의 고통을 함께 하며 의지를 버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쇼펜하우어의 동정은 공감이 아닌 동고하고 번역될 때가 있다. 말하자면 나와 타인이 고통을 함께 나눈다는 뜻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나와 타인의 구별이 사라지면서 너무 쉽게 동정을 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그래서 쇼펜하우어는 고통을 부여하는 주체와 고통을 떠맡게 되는 객체를 동일시하려고도 했다.

      그는 이런 과정을 통해 결국 동정이라는 방법도 일시적인 해탈에 지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의지의 부정을 행해 나아간다. 하지만 쇼펜하우어가 고통을 서로 나누는 동고의 의미에서 동정이라는 요소를 생각해 냈다는 사실 자체가 철학사에 있어서 획기적인 일이다. 이는 단순히 특이한 발상이라든가, 훗날 니체를 비롯한 수많은 철학자들에게 영향을 끼쳤다는 표면적인 평가에 그치지 않는다. 동고의 개념이 이성의 독주를 제어하는 장치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동정의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쇼펜하우어느 행복론에 관한 책을 집필했는데 아무리 돈을 많이 갖고 있어도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돈보다 정신적인 교양이 없으면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에서도 쇼펜하우어가 감정적인 요소를 중시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쇼펜하우어가 이성을 무시한 것은 아니니, 감정과 이성을 두루두루 살펴본 것이 쇼펜하우어의 높은 업적이다.

     

    728x90
    반응형
    LIST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