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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양 철학사 24 : 키르케고르(1813~1855)
    서양철학사 2022. 2. 3.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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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르케고르

     

     

      덴마크의 철학자로, 실존적 자각이라는 문제에 천착한 실존주의 철학의 선구자로 손꼽힌다. 인간의 현실 존재는 객관적인 이성을 통해 파악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현실의 생을 직시하고 자신의 의지와 실존적 결단으로 살아가는 적극적인 삶을 추구했다.

     

     

     

     

    절망 : 절망이란 무엇인가?

     

      혹시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본 적 있는가? 심한 절망감에 휩싸여 이 세상이 끝난 것 같은, 꺼져 가는 느낌....... 물론 아무리 절망스러운 상황에 부닥쳐도 세상은 끝나지 않고 땅이 꺼지지도 않는다. 단지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몰린 것처럼 지독하게 절망스럽다고 느낄 따름이다. 그렇다면 절망이란 과연 무엇일까?

      절망을 철학의 주제로 논한 철학자가 있었으니,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책을 쓴 쇠렌 키르케고르이다. 그의 생애는 평생 불안과 함께 했다. 언제나 절망감을 느끼며 자신의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던 그에게 있어서 절망은 그야말로 죽음에 이르는 병이었다.

      키르케고르는 인간은 절망에서 벗아날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저 가만히 앉아서 죽음을 받아들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절망의 고통은 죽을 수도 없다는 사실에 있다. 죽을 만큼 힘든 고통을 맛보면서도 결코 죽을 수 없다. 인간은 무시무시한 죽음을 인지한 순간, 그 어느 때보다 강렬히 생을 갈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절망할까? 키르케고르는 이렇게 말한다.

      "만약 인간의 내면에 영원한 존재가 없었다면 인간은 절망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절망의 공식'이라고 불리는 키르케고르의 이론과 곧바로 연결된다.

      우선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 절망한다. 그러면 절망하는 자신이 싫어서 절망의 소굴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친다. 죽으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을 해칠 수 없다. 이는 인간의 마음 속에 영원한 존재가 존재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인간에게는 영원의 이상향이 있기 때문에 절대 죽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만약 인간의 내면에 영원한 존재가 없았다면 애초에 인간은 절망 따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인간은 이상이 있기 때문에 절망한다.

      키르케고르는 절망을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표현했다. 그런 의미에서 키르케고르는 죽음이 아닌 삶에 집착했다. 오히려 적극적인 자세로 주체적인 삶을 모색한 것이다.

      키르케고르는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개척하는 주체성이 곧 진리라고 선언함으로써 실존주의 철학의 서막을 열었다. 주체성을 상실한 상태가 바로 절망이다. 키르케고르는 절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주체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존의 세 가지 단계 : 어떻게 하면 자신의 본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까?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우리는 진정한 자신으로 살고 있을까? 거짓된 삶을 사는 것은 아닐까? 참된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키르케고르는 이러한 철학적 질문들에 답을 준다.

      키르케고르는 현대 실존주의 철학의 선구자로 꼽힌다. 그가 말하는 실존이란 '본래의 자기 자신'이고, 실존한다는 것은 본래의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는 뜻이다. 이때 본래 자신의 모습을 상실한 상태를 절망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 자신의 참모습을 되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키르케고르는 주체성을 되찾기 위해 세 가지 단계를 제시한다. 바로 '실존의 세 가지 단계'이다.

      첫 번째는 '미적 실존'의 단계다. 이는 행동이나 선택의 근거가 감각적 쾌락에 머무는 단계를 말한다. 미적 단계에서는 감각적인 삶을 살아갈 따름이다. 그런데 감각적인 쾌락을 손에 넣을수록 인간은 지독한 권태감을 맛본다. 반대로, 바라는 것을 얻지 못했을 때는 자기혐오에 빠지고 좌절이라는 이름의 절망을 맛본다. 이런 권태감과 좌절의 끝자락에 서면 다음 단계로 힘겹게 나아갈 수 있다.

      두 번째는 '윤리적 실존'의 단계다. 이는 인간성에 눈뜨면서 윤리적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단계를 말한다. 이 단계에서는 고매한 인격을 갖추기 위해서 바람직하면서도 윤리적인 인간상에 자신을 맞추려고 행동한다. 하지만 윤리적 실존의 종착역에 이르면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무력감에 빠지거나 반대로 자기 자신을 윤리적으로 완벽한 인물이라고 생각하며 자아도취에 빠진다. 어느 쪽이든 윤리적 실존의 막다른 곳은 자신의 '한계'라는 의미에서 절망의 늪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인간은 이런 불안과 절망을 통해 마지막 단계로 나아간다.

      세 번째 단계는 '종교적 실존'의 단계다. 거듭되는 절망의 끝자락에서 자신을 신에게 맡기는 단계다. 일반적으로 인간을 자기 부정을 통해 자신의 죄를 뉘우친다. 그리고 자신의 내면에 신의 존재를 받아들인다. 이때 인간과 신은 너무나 동떨어진 실존의 격차가 있음을 알고 다시 심한 죄책감에 휩싸인다.

      이 과정을 통해 마침내 인간은 자신과 전혀 다른 존재인 '신의 실존'을 받아들인다. 죄 많은 인간이 고결한 신의 실존 앞에서 '단독자'로 서게 되는 것을 이른바 '신 앞에 선 단독자'가 되는 것이다. 이때 인간의 두 다리를 지탱하는 것은 이성을 초월한 비합리적인 '신앙' 뿐이다.

      이처럼 인간은 신을 앞에 두고 가까스로 본래 자신의 참모습을 자각한다. 신앙을 바탕으로 주체적인 삶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야흐로 '실존'의 서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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