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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철학사 26 : 베르그송(1859~1941)서양철학사 2022. 2. 4. 21:29728x90반응형SMALL
베르그송
프랑스 출신의 철학자로, 근대 자연과학적인 시간 관념을 비판하고, '순수 지속'이라는 내적, 질적인 시간관에 기초한 '생철학'을 전개했다. 더욱이 다윈의 진화론을 비판하며 생명 진화의 근원적인 힘으로써, '엘랑 비탈'을 주장했다.
순수 지속 : 시간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벌써 8시네"하며 구체적인 시간을 항상 의식한다. 시계를 가까이하며 언제나 시간 속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란 무엇일까?
시계는 시간의 경과를 바늘 사이의 거리로 수치화시킨다. 그렇다면 시간은 '시계'일까? 안타깝게도 시계는 시간이 아니다. 1분, 1시를 가리키는 시계는 생활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우리가 만들어 낸 도구에 지나지 않느다.
시간은 무엇이고, 우리는 시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앙리 베르그송의 '순수 지속'은 이러한 물음에 답을 준다.
우리는 보통 시간을 양적으로 잴 수 있는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한 시간, 두 시간 식으로 시간을 세는 것은 시간이 분할 가능한 성질을 가진 양적 개념이라고 이해한 것이다. 그러나 베르그송이 주장한 시간이란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직관적인 개념이다. 이를테면 마음 속의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음 속 시간은 낱개로 쪼갤 수 없다. 달리 표현하면 순간순간의 시각은 각각 따로따로 독립적으로 존재하지만 실제로 시간은 자신의 내면에서 서로 이어져서 일부의 시간이 전체를 비추는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각각의 음이 끊어지지 않고 부드럽게 이어지는 멜로디처럼 시간도 내면으로 직관하면 전체적으로 이어져 흘러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숫자를 더하듯이 시간을 단편적으로 인식한다. 베르그송은 이처럼 분할된 시간 개념은 공간 개념에 익숙한 사람들이 시간을 공간적으로 파악하려는데 그 원인이 있다고 말한다. 시간은 공간과 다르다. 공간은 양으로 측정할 수 있다. 1제곱미터를 추가하면 그만큼 방의 크기는 더 커진다. 하지만 시간은 늘어나지 않는다. 시간은 양과 대비되는 질적 존재이다. '순수 지속'은 이렇게서 직관을 통해 파악하는 질적 존재로서의 시간, 의식의 흐름처럼 지속해서 이어지는 시간을 뜻한다.
일상생활에서 시간을 양으로 계산하지 않고 생명과 관련된 직관적인 개념으로 포착하면, 우리가 겪은 과거도 단순히 지난 시간에 머무르지 않는다. 우리가 기억을 떠올렸을 때 과거는 분절된 사건에서 벗어나,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이때 기억은 머릿속에 잠자고 있던 것을 단순히 끄집어내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머릿속에 과거 그대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은 째깍째깍 돌아가는 시곗바늘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시간을 보는 관점이 달라지면 인생의 의미부터 사회 상황, 사회의 의미도 달라질 수 있다.
더 이상 시간을 양으로 잴 수 있는 물리적 관점이 아닌 인간 내면에서 끊임없이 지속하는 '순수 지속'의 개념으로 받아들여 보자. 그러면 우리는 시간을 더욱 소종하게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엘랑 비탈 : 인간은 어떻게 진화하는가?
인간은 어떻게 진화했을까? 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이 [종의 기원]에서 제시한 진화론은 인간의 진화를 이론적으로 규명해 준 획기적ㅇ니 이론이었다. 단순하게 이야기 하자면, 자연계의 생활 조건에 적응한 생물체만 살아남는 자연선택으로 인해 다른 영장류들과 분리되어 차츰차츰 인간으로 진화했다는 주장이다.
이 이론을 처음 접한 철학자들은 복잡다단한 생명의 역동성을 설명하기에는 자연선택이 지나치게 단선적인 이론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청학자들은 진화의 개념을 어떻게 통찰했을까?
여기에서 베르그송의 독자적인 진화론을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엘랑 비탈(elan vital)'이라는 개념이다. '엘랑'이란 '도약', '비약'이라는 뜻의 프랑스어로, '엘랑 비탈'은 '생명의 비약'이라는 의미다. 즉 생명은 결코 일원화된 진화로 탄생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러 방향으로 폭발적으로 분산됨으로써 비약적으로 진화했다는 이야기다.
생명이 일정한 시점에서 식물과 동물로 갈라졌지만, 식물에도 동물의 흔적이, 동물에도 식물의 흔적이 남아 있다. 식물 가운데 식충 식물이나 움직이는 식물이 있다는 사실에서도 이를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생명은 여러 갈래의 흐름으로 분화해 나가면 진화하는데, 이 진화의 원동력이 바로 엘랑 비탈이다.
엘랑 비탈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베르그송은 서로 다른 진화 라인에 속해 있지만 유사한 구조를 갖추고 있는 기관에 주목했다. 예를 들면 '연체동물과 척추동물이라는 전혀 다른 진화 라인에 속한 생물이 모두 눈이라는 복잡한 기관을 가진 이유는 무엇일까?'와 같은 문제를 고민한 것이다. 실제로 연체동물과 척추동물의 눈은 화학적 구성이나 유래하는 배아가 전혀 다른데도 비슷한 형태와 가능을 갖추고 있다.
베르그송은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신체 조직에서 발생한 어떠한 문제가 임계점에 도달하면, 예측 불가능한 생명의 변화가 생겨난다. 즉 '본다'는 강력한 갈망이 에너지로 작용해 임계점에 도달했고 그것이 마침내 눈이라는 기관으로 형성되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더욱이 베르그송은 생명의 진화 과정을 기계론적으로 이해하려는 발상을 거부했다. 기계론적 사고에서는 자연계 전체를 수학적인 법칙에 지배당하는 거대한 기계로 포착한다. 기계론은 미래의 진화까지도 계산하려고 덤비는데 이렇게 되면 생명의 모든 움직임은 이미 결정되고 주어진 것에 불과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예측 가능한 물질에만 작용할 수 있는 법칙을, 전혀 예측 불가능한 사태가 발생할 수 있는 생명의 세계로까지 부당하게 확대하려고 한 것이다. 베르그송은 이러한 기계론적 사고를 강력하게 비난했다.
우리는 베르그송을 통해 생명은 정지된 물질과는 엄연히 다르며, 쉼없이 운동하는, 말 그대로 살아있는 생명 그 자체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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