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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철학사 28 : 하이데거(1889~1976)서양철학사 2022. 2. 6. 19:59728x90반응형SMALL
하이데거
20세기 독일의 대표 철학자로, 스승인 후설의 현상학을 바탕으로 인간의 존재 현상에 관한 실존주의적 존재론을 전개했다. 존재의 의미에 대한 물음을 밝히기 위한 그의 사유는 실존주의 철학뿐만 아니라, 탈근대 사상의 조류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세계 - 내 - 존재 : 인간의 근원적인 삶이란?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인간의 근원적인 삶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물음의 답을 생각하기 어렵다. 그저 하루하루를 정신없이 보내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인간인 이상 '내가 과연 제대로 살고 있는 걸까?'하는 철학적인 질문을 때때로 자신에게 던진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살아가는 의미나 근원적인 삶에 대한, 답이 보이지 않는 물음을 평생 가슴에 안고 사는지도 모른다.
마르틴 하이데거의 '세계-내(안)-존재'는 우리가 인간의 근원을 탐구할 때 훌륭한 지침이 되는 철학 개념이다.
하이데거가 표현한 '세계-내-존재'란 세계라는 테두리 안에서 다양한 사물과 관련을 맺고 서로 배려하면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예를 들면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서 칫솔을 이용해서 이를 닦고, 회사 업무를 볼 때는 컴퓨터를 활용하며, 잠자리에 들 때는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한다. 하이데거는 이처럼 세계와 함께하는 인간 존재의 특성을 포착해 인간을 '현존재'라고 불렀는데, 그런 의미에서 '현존재'가 곡 '세계-내-존재'인 것이다.
다만 인간이 사물과 관련을 맺고 살아간다는 것은 단순히 사물에 둘러싸여 의식주를 해결하며 살아가는 삶을 뜻하지 않는다. 그런 식으로 사물에 휩싸여 의미 없이 아침 식사를 되풀이하는 존재였다면 나라는 존재는 누가 되어도 상관없다. 하이데거는 이런 존재는 누가 되어도 상관없다. 하이데거는 이런 존재를 그저 인간, 곧 익명의 '세상 사람'이라고 불렀다. 문제는 이럴 경우 궁극의 목적이어야 할 인간이 교환 가능한, 대체 가능한 존제로 전락한다는 사실이다. 만약 인간이 도구적 목적에 그친다면, 반드시 '나'일 필요는 없다. 따라서 하이데거는 교환 가능한 인간의 삶을 비본질적인 존재 방식으로 파악하고, 본질적인 삶을 강조했다.
원래 하이데거는 세계-내-존재라는 개념을 생각해 낼 때, 생물학에서 환경세계라는 개념을 참고했다고 한다. 모든 생물은 환경세계를 갖고 있지만, 이 환경세계가 모두 동일한 것은 아니다. 우선 무생물의 경우, 살아 있지 않기에 세계를 갖지 않는다. 그리고, 동물의 경우, 본능에 의해 살아가기에 세계에 고착된다. 반면에 인간의 세계는 형성적이다. 즉 인간은 스스로 세계를 만들에 내는 생물이라는 것이다.
정작 하이데거 본인은 자신의 사상이 실존주의로 일컬어지는 것을 부정했지만, 그의 철학이 스스로 인생을 개척하는 실존철학으로 분류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선구적 결단 : 죽음의 의미는 무엇인가?
인간은 죽음을 어떨게 받아들일까? 대체로 죽음이라고 하면 상실, 슬픔, 공포 등등 부정적인 이미지를 먼저 떠올린다. 그런데 하이데거는 죽음이하는 인생의 가장 무거운 주제에 긍정적인 해답을 제시했다.
인간의 내면에는 근원적인 불안이 똬리를 틀고 있다. 누구나 품고 있는 죽음에 대한 불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이데거는 이 불안을 '선구적 결단'이라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전환하려고 한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선구적 결단이란, 미래에 닥칠 죽음이 가능성을 미리 앞질러서 각오하고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이를 통해 하이데거는 현존재를 시간성 안에 자리매김했다. '탄생과 죽음' 사이에 낀 존재의 유한성을 자각하게끔 한 것이다.
현존재는 선구적 결단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죽음을 직시함으로써 산산이 부서지는 고통을 맛본다. 한편으로는 이미 던져진 현실로 되돌아와서, 자신의 고유한 가능성에 집중하며 죽음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각오를 한다. 요컨대 죽음을 향한 존재로서 대체 불가능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누구나 죽음을 의식하면 진심을 다해 살아가려는 마음이 샘솟는다. 하이데거는 바로 그런 진지한 자세로 삶에 임하는 모습이 본질적인 현존재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하이데거는 유한한 삶을 의식하기 위해 죽음을 긍정적으로 포착했다. 이것이 그가 죽음의 철학자로 일컬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죽음을 향한 존재는 하이데거의 시간 개념에서도 또렷이 드러난다. 요컨대 하이데거는 죽음을 자각하는 일이 '선구적 결단'을 낳고, 선구적 결단을 통해 비로소 지금 이 순간을 의식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근원적 시간, 즉 '본래적 시간성'이다.
반면에 미래를 막연하게 받아들이고, 현재라는 시간을 허투루 살아간다면 '비본래적 시간성'만 보게 된다. 결과적으로 죽음을 망각하고 그저 하루하루 의미 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는 '그저 인간'으로 살아간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하이데거는 통속적인 시간 개념을 극복해야 한다고 호소한다.
하이데거는 말년에 히틀러와 나치를 지지한 행동으로 대학에서 추방당하고 많은 비난을 받았다. 그가 적극적 협력자가 아니었다는 의견도 있지만, 제2차 세계대전의 원인이자 극심한 인종차별주의를 주장한 나치에 협력했다는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죽음의 의미를 긍정적으로 포착하고 인간 존재의 의미를 끊임없이 모색한 하이데거의 철학만큼은, 오늘날까지도 깊이 있게 연구될 만큼 훌륭한 없적으로 추앙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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