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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철학사 30 : 메를로퐁티(1908~1961)서양철학사 2022. 2. 7. 19:38728x90반응형SMALL
메를로퐁티
프랑스의 철학자로, 철학 역사상 최초로 '몸'을 철학의 주제로 삼았다. 후설의 현상학을 프랑스에 본격적으로 소개했고, 소쉬르의 언어학,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를 도입하는 등 현대 사상 구축에 폭넓게 활동했다. 그런 의미에서 프랑스 현대 사상의 초창기를 짊어진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신체 도식 : 몸을 통제할 수 있을까?
과연 인간은 자신의 몸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제어할 수 있을까? 모리스 메를로퐁티의 '신체론'은 이런 궁금점에 훌륭한 답을 준다.
메를로퐁티는 인간의 몸을 현상학적으로 연구함으로써 데카르트가 주장한 정신과 물질의 이원론을 극복하고자 했다. 즉 자신의 신체가 경험하는 바는 물질도 정신도 아닌, '애매한 존재 방식'이라는 것이다.
이런 신체의 애매성은 인간이 신체를 매개로 지각한다는 사실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신체는 지각의 대상인 동시에 지각의 주체인 것이다. 이로 인해 우리는 신체 일부를 영원히 자각할 수 없고, 일반적으로 자신의 몸을 다른 사물처럼 자유롭게 관찰할 수도 없다. 또한 '내' 몸이지만 내 몸 구석구석을 자유롭게 들여다볼 수 없는 것처럼, '나'는 내 몸이 행하는 의식 아래의 활동을 의식으로 포착할 수 없다. 요컨대 지각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달리 표현하면 비인칭적인 행위로 우리의 몸은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신체는 다양한 감각과 운동을 서로 연결해 거기에서 하나의 구조와 의미를 연상하게 하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이처럼 상황에 적응하는 신체의 대응 능력을 '신체 도식'이라고 한다.
인간의 몸은 감각을 즉석에서 근육 운동으로 바꾸거나, 어떤 신체 부위의 근육 운동을 다른 신체 부위의 근육 운동으로 순식간에 변환할 수 있다. 또는 서로 다른 두 감각이 순간적으로 교류할 수도 있다. 우리는 이런 '신체 도식' 덕분에 복잡한 세상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지각하고 행동할 수 있다. 이는 자신의 의식을 중심으로 인간 존재의 본질을 파악하고자 했던 종래 실존의 발상과는 차이가 난다. 오히려 신체를 중심으로 한 '신체적 실존'이라고 부를 수 있다.
신체 도식 덕분에 인간은 세계 안에서 순조롭게 지각하거나 행동할 수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신체의 감각과 운동이 사물을 하나의 상으로 통합하는 '게슈탈트(Gestalt)', 즉 형태적 특성이나 구조로 포착해주기 때문이다.
신체가 세계 안에서 행위를 할 때 떠오르는 게슈탈트는 대체로 무의식의 영역에 속한다. 신체 도식을 통해 드러나는 대부분의 게슈탈트는 개체로서의 개인이 탄생하기 휠씬 전부터 유전적으로 계승되어 온 것이다. 그러 의미에서 신체적인 실존은 개인을 초월한 전통의 반복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살 : 몸과 세계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
인간의 몸과 세계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
물론 몸, 즉 시네는 세계 안에 존재하지만 그런 수동적인 의미를 초월해 좀 저 적극적인 신체의 의미를 모색한 철학자가 몸의 현상학자로 일컬어지는 메를로퐁티다.
메를로퐁티는 기존의 상식과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몸과 마음의 관계를 논했다. 신체를 대상물과 인간 지각과의 매개체로 포착한 것이다. 이는 우리가 사물을 보거나 만지며 지각하는 일은 항상 신체를 통한다는 사실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메를로퐁티는 신체야말로 우리 인간의 세계, 그리고 인간의 의식을 구체적인 형태로 빚어 준다고 생각했다. 대표적인 예로 '환각지'를 들 수 있다.
'환각지'란 수술이나 사고로 손발을 잃었음에도 마치 건강한 손발이 존재하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끼는 현상을 말한다. 불의의 사고를 당해 오른손을 잃었지만, 무의식적으로 오른손을 뻗어서 사물을 쥐려고 하는 것이 바로 환각지다. 이 현상은 사고를 당한 사람의 세계가 사고 이전의 몸이 지각했던 예전 상태에 머물러 있을 때 일어난다. 하지만 오른손이 없는 세계에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그 사람의 세계는 변모하기 시작한다.
이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몸이란 단순히 기계가 아닌, 세계와 한 개인을 연결해 주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몸은 '세계로 향하는 지향성'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것이다. 이처럼 '세계의 몸'은 타인과 공감하기 위한 공통 인터페이스로서의 '살(la chair)'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요컨대 나와 마찬가지로 타인도 몸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타인을 이해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는 것이다. 즉 오른손이 왼손에 닿았을 때, 우리는 오른손이 왼손에 접촉했다는 감각과 왼손이 오른손에 좁촉했다는 감각을 모두 가질 수 있는 것처럼 이런 쌍방향의 소통은 자신의 신체뿐만 아니라 타인이나 사물에 대해서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세계는 '하나'로 형성되고 연결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하나'는 '살'이다. 덧붙이자면 [성서]에서는 인간이 살을 나누어 갖는다는 취지로, 살이라는 표현이 등장하기도 한다.
결국 세계의 모든 것은 똑같은 하나를 다른 형태로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이때 세계에 존재하느 개별 사물의 차이를 인식하려면 인간은 몸을 매개로 지각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사실은 몸의 의미가 더욱 깊어지고 더욱 넓어지도록 한다.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자신의 몸은 단순히 '나'의 몸이라느 사실을 뛰어넘어 세계와 자신을 이어주는 매개체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말하자면 우리의 신체는 마음의 알갱이를 결정하는 존재이자, 세계와 연결된 소중한 존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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