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양 철학사 31 : 레비나스(1906~1995)서양철학사 2022. 2. 8. 09:35728x90반응형SMALL
레비나스
리투아니아 태생의 유대계 프랑스 철학자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감금 당해 겪은 끔찍한 체험을 통해 '타자성의 철학'이라는 독창적인 사상을 낳았다. 자아보다 타인의 존재를 먼저 생각함으로써, 자기중심적인 서구 문명에 반성의 계기를 마련했다.
얼굴 : 왜 타인의 시선에 신경이 쓰일까?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체로 사람들은 타인을 의식하고 또 타인의 시선에 신경을 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의 존재를 의식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나와 타인을 철학적으로 사유한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사상을 통해 이러한 궁금증을 풀어보자.
레비나스에 따르면 본디 인간은 사물의 형태를 명확히 규정하고 싶어 하는 존재라고 한다. 이는 사물을 확실하게 규정해서 소유하기 위함이다. 이때 사물을 소유한다는 것은 자신과 다른 외부의 세계가 자신의 세계로 편입되어 하나가 된다는 것을 뜻한다.
이렇듯 인간은 욕구로 똘똘 무인 욕구의 덩어리다. 달리 표현하면 인간은 결핍의 덩어리다. 달리 표현하면 인간은 결핍의 덩어리다. 부족하니까 끊임없이 갈구한다. 그리고 그 욕구를 충족시키면 세계의 일부는 자신의 것이 된다.
그렇다면 자신의 세계로 절대 흡수되지 않는, '자신과 다른 절대적인 세계가 존재하지 않을까'하는 의문을 가질 법하다. 바로 이것이 레비나스 철학의 주제이다.
끊임없이 찾고 있지만 결코 채워지지 않는 것, 레비나스는 이를 '욕망되는 것'이라고 불렀다. 말하자면 '욕구'와 '욕망'을 구별한 것이다.
욕망의 대상은 절대 충족되지 않으면서 무한하게 추구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타자'라는 것이다. 따라서 타자는 아무도 소유할 수 없다. 아니, 타자는 그 누구에게도 쇼유되지 않는다. 레비나스의 대표 저서인 [전체성과 무한]이라는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타자는 결코 전체 속에 흡수되지 않는 존재다. 이렇듯 레비나스는 개성을 몰살하는 전체라는 개념을 적대시했다. 특히 전체주의가 그 전형적인 사례이다.
절대적인 타자의 존재를 레비나스는 이렇게 표현한다.
"절대적으로 낯선 것만이 우리를 가르칠 수 있다. 그리고 나에게 절대적으로 낯설 수 있는 것은 오직 인간뿐이다."
이때 결코 손에 넣을 수 없는 타자의 존재를 가장 또렷하게 상징하는 것이 바로 '얼굴'이다. 얼굴은 타자의 드러남이다. 더욱이 여기에서 말하는 얼굴은 일반적인 얼굴이 아닌, 당장 대면하고 있는 타인의 얼굴을 뜻한다.
좀 더 쉽게 표현하다면, 인간은 타인의 얼굴을 응시함으로써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의식하고 자신에게 부과된 책임감을 느낀다. 얼굴은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다를 분 아니라, 타인의 시선은 나에게 결코 흡수될 수 없는 다른 세계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진실한 이유일 것이다.
윤리 : 윤리란 무엇인가?
우리는 흔히 사회의 윤리 의식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윤리 의식을 고취하고자 학교에서 윤리 과목을 가르치고 배운다. 하지만 윤리의 실체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만약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하거나 지켜야 할 도리'라는 사전적인 정의를 훌쩍 뛰어남아 윤리의 참모습을 확인하고 싶다면, 레비나스의 '타자 윤리학'이 올바른 길로 안내해 줄 것이다.
'타자'란 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를 일컫는다. 자신과 전혀 다른 세계에서 온 '차이'를 가진 존재다. 그런데도 차이로 존재하는 타자는 내 마음속 깊은 곳으로 파고든다. 바로 이 점이 문제다. 항상 차이로서 존재하는 타자가 자신의 마음을 점거하고 있기 때문에 타자와 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자, 불가분의 관계가 된다. 타자를 책임져야 할 의무가 생기는 것이다.
어쩌면 현대인들은 일방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에 뭔가 불공평한 게임이라고 못마땅하게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레비나스는 타자의 존재 자체를 '윤리'라고 생각한다. 타자 덕분에 나라는 존재가 성립한다고 보는 것이다.
보통 윤리라고 하면 자신과 타인 사이의 대등한 관계로 포착하기 마련이다. 이는 우리가 보통 인간과 인간이 서로 관계를 맺을 때 지켜야 할 규범, 규칙을 윤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레비나스가 주장하는 윤리는 타자에 대해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비대칭적인 관계를 일컫는다. 타자의 존재 자체가 윤리라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을 의미한다.
자기 자신보다 타인을 먼저 생각한다는 점에서 레비나스의 사상은 종래의 서양철학과는 사뭇 다르다. 실제로 레비나스는 플라톤에서 데카르트, 헤겔로 이어지는 서양철학을 '전체성의 형이상학'이라고 부르며 통렬히 비난한다. '나의 의식 속에서 세계를 파악한다'는 이전의 철학적 토대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사상인 전체주의와 연결된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관점을 통해 레비나스의 타자론은 1980년대 이후 데라다 등의 탈근대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레비나스의 타자 개념은 자기중심적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현대인들에게 자아 중심이 아닌 타인 중심의 시각으로 생각할 것을 제안했다. 자아 중심의 현대 사회를 되돌아보는 반성의 계기를 선사한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윤리조차 자신을 위해 해야 할 일이라는 자아 중심의 관점에서 포착한다. 하지만 타인을 위해 자신이 해야 할 마땅한 일이라고 윤리를 새롭게 정의한다면 어떻게 될까? 분명 지금보다 휠씬 타인을 배려하는, 폭력 없는 평화로은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728x90반응형LIST'서양철학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양 철학사 33 : 프로이트(1856~1939) (18) 2022.02.10 서양 철학사 32 : 존 듀이(1859~1952) (14) 2022.02.09 서양 철학사 30 : 메를로퐁티(1908~1961) (15) 2022.02.07 서양 철학사 29 : 사르트르(1905~1980) (6) 2022.02.07 서양 철학사 28 : 하이데거(1889~1976) (2) 2022.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