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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철학사 29 : 사르트르(1905~1980)서양철학사 2022. 2. 7. 09:45728x90반응형SMALL
장 폴 사르트르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소설가로, 후설의 현상학을 토대로 '자유'의 개념을 철학적 주제로 사유했다. 아울러 자유를 앗아가는 사회 현실에 맞서 싸우면서 다양한 경로를 통해 사회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하는 앙가주망을 실천했다.
실존주의 : 운명을 바꿀 수 있을까?
과연 운명을 바꿀 수 있을까? 아니, 운명은 바뀔 수 있을까?
운명을 부정하고 좀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미래를 개척하고 싶은가? 만약 "그렇다"라고 대답했다면, 장 폴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사상이 훌륭한 길잠이가 되어 줄 것이다.
실존주의는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나가는 주체적 삶을 강조한 철학자이다. 사르트르 역시 인간이란 어떤 본질에 지배를 받는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삶을 개척해 나가는 실존적 존재라고 힘주어 말했다.
키르케고르와 니체 하이데거를 비롯한 많은 철학자들이 실존주의의 중요성을 설파했는데, 사르트르는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실존철학의 중심에 섰다.
실존주의를 본격적으로 소개한 사르트르의 저서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5년 10월, 그가 파리에서 한 강연을 담은 책이다.
당시 강연장은 수많은 청중들로 가득 차 있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시기는 사람들이 실존주의를 빠딱한 시선으로 보고 있었던 터라, 실존주의가 무엇인지 직접 확인하고 싶은 사람들이 강연장에 우르르 몰려온 것이다. 사르트르는 이와 같은 거센 반발 속에서 시대를 뚫고 앞으로 나아갔다.
강연회 자리에서 그는 실존주의를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고 간명하게 표현했다. 여기서 '실존'이라는 것은 현실 존재를 뜻하고, '본질'이라는 것은 정해진 운명과 같은 것이다.
사르트르는 종이 자르는 칼인 페이퍼 나이프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페이퍼 나이프는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진 물체이자, 동시에 종이를 자르는 용도, 즉 본질을 갖추고 있다. 그렇기에 페이퍼 나이프는 본질이 앞서야 비로소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본질에 따라 존재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페이퍼 나이프처럼 제작 방식이나 용도가 미리 정해져 있는 존재는 본질이 실존에 앞선다. 달리 표현하면 운명이 이미 정해져 있는 셈이다.
인간은 이와 반대로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 인간은 태어난 직후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다. 하지만 조금씩 성장해 가며, 스스로 자신의 삶을 만들어 나간다. 인간의 운명은 본질이 결정된 페이퍼 나이프와 달리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사르트르는 이처럼 자신의 인생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상태를 "인간에게 자유형이 선고되었다"라고 이야기했다. 이는 스스로 무엇인가를 선택하지 않고서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인간의 자유로운 삶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 말이다.
우리는 "알아서 하세요. 뭘 해도 좋습니다."라는 말을 들으면 오히려 혼란스러워한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 보자. 사르트르의 말을 통해 우리는, 인간만이 자신의 선택으로 인생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자랑스러운 진실을 깨달을 수 있다.
앙가주망 : 사회 개혁은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까?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사회 개혁을 외치더라도 하루 아침에 가시적인 변화나 변혁은 이루기 힘들다. 어찌해 볼 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 넘을 수 없는 벽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혁을 행해 돈키호테처럼 무모하게 돌진해야 하는가? 아니면 안주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가?
사르트르가 주장한 '앙가주망(engagement)'은 이런 물음에 진취적인 답을 준다.
사르트르는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다.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포로로 붙잡혔다가 가까스로 탈출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그의 사상은 전쟁의 극한 상황에 영향을 받았다. 전쟁이라는 피할 수 없는 억압 속에서, 결국 '자유'란 주어진 '상황' 속에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했던 것이다.
주어진 상황 속에서 자유를 실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상황을 피할 수 없다면 직접 뛰어드는 수밖에 없다. 이것이 사르트르사 찾아 낸 답이었다. 바로 프랑스어로 '적극적인 사회 참여'를 뜻하는 '앙가주망'이다.
'앙가주망'을 바탕으로 하는 저돌적인 자세는 꿈쩍도 하지 않는 현실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소극적인 태도와는 180도 다르다. 오히려 적극적인 사회 참여를 통해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대단히 진취적인 태도다. 그러니 결과는 나중 문제다. 멍하니 벽만 쳐다보고 있으면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힘껏 맞서 싸워야 한다. 자유는 그 벽 너머에 있을테니까.
사르트르가 주장한 용감무쌍한 앙가주망의 이면에는 책임감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 책임감이란 자신이 내린 자유로운 선택에 따른 책임이다, 인류에 대한 책임이다. 사르트르는 나의 행위가 나의 실존을 결정할 뿐만 아니라 전 인류의 실존을 결정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처럼 실존주의는 자기 자신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편협한 사고가 아니라, 인류와 사회를 사상이다.
마침내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개인의 행동을 통해 사회 변혁을 실현하는 이론으로 발전해 나갔다. 실제로 사르트르는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반전 운동을 펼쳤고, 알제리 독립 운동에 참여하는 등, 앙가주망을 실천하며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살았다. 물론 스스로 선택해서 말이다. 이것이야말로 사르트르가 모색한 실존주의적 자유의 실현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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