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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양 철학사 7 : 몽테뉴(1533~1592)
    서양철학사 2022. 1. 17.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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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테뉴

     

     

      르네상스 시대의 프랑스를 대표하는 사상가이자 모럴리스트의 선구자로, 허무주의가 아닌 자유로운 회의주의 관모점에서 인간의 삶을 탐구했다. 무지와 어리석음을 깨닫고 끊임없이 '앎'을 추구하며, 진리에 대해 알아 가는 삶이 진정한 삶이라고 강조했다.

     

     

     

    모럴리스트 : 인간은 왜 목표가 필요할까? 

     

      우리는 확고한 목표 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인간에게는 왜 목표가 필요할까? 목표는 왜 중요한 거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다 보면 필연적으로 어떻게 살아가여 할지 방향을 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간의 내면 세계를 탐구하며 인간다운 삶을 모색할 때 '모럴리스트(moralist)'라는 단어가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도덕을 뜻하는 모럴(moral)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모럴리스트란 도덕에 관해 저술한 사람들을 아우르는 말이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고 참된 삶을 모색하는 문필가들을 말한다. 하지만 모럴리스트는 근대의 도덕 철학을 연구했던 학자들과 달리, 틀에 짜인 규범을 제시하거나 확고한 체계를 구축하지는 않았다.

      모럴리스트들은 주로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생각을 묘사했다. 그들은 체험과 사색을 써 냐려가는 가운데 도덕적인 삶을 제시할 수 있다고 여겼다. 따라서 이들의 글은 형식을 갖춘 체계적인 사상이라기보다는 수필이나 잠언 같은 자유로운 형식을 따르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인 모럴리스트로는 16~18세기에 걸쳐 프랑스에서 활약한 사상가 미셸 몽테뉴와 블레즈 파스칼을 꼽을 수 있다. 그중에서도 몽테뉴의 대표작인 [에세]에서는 모럴리스트의 본보기가 될 만한 구절이 많다.

     [에세]는 원래 '시도하다, 시험하다'라는 뜻의 프랑스어인 '에세예(essayer)'에서 유래한다. [에세]라는 제목은 이 책이 몽테뉴 자신의 판단력을 시험하고 작동시킨 결과물임을 나타낸다.

      책의 첫머리에서 몽테뉴는 자신의 인간관을 정확하게 밝혔다. "인간은 놀라울 정도로 공허하고, 다양하며, 변화무쌍한 존재다."

      몽테뉴는 늘 변하는 인간이기에 인간에게는 목표가 필요하다고 말하며, 이것을 정처 없이 떠도는 바람에 비유했다. 목적 없이 떠도는 영혼이 확고한 방향성을 정하지 않으면 자신의 내면에서 길을 잃고 헤맨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영혼에게 목표를 정해 주고 나아가야 할 대상을 끊임없이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간이 강인한 존재라서 목표를 정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목표가 없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몽테뉴는 인간의 본질을 예리하게 분석해 인간다운 삶을 제안한 것이다.

      인간이라는 존재를 과대 포장해서는 안되지만 그렇다고 나약하게만 단정 지어도 곤란하다. 이성을 갖춘 존재로 인간을 통찰할 때 비로소 참된 인간의 내면세계를 탐구하고 분석할 수 있으리라. 바로 이것이 인간성을 깊이 있게 고찰하는 모럴리스트만의 독특한 관점이다.

     

    크 세주 : 나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알고 있을까? 내가 아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이런 질문에 스스럼없이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를 기억한다면, '내가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안다'라고 겨우 대답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나는 무엇을 아는가?'라는 어려운 질문을 평생 자신에게 던진 인물이 있다. 바로 몽테뉴다.

      몽테뉴는 평생 인간과 인간의 이상적인 삶을 탐구했고 그 과정에서 본보기가 될 만한 인간상을 찾았다. 그가 모범으로 삼은 훌륭한 인물을 다음 세 사람이다.

      첫 번째 인물은 고대 그리스의 시인인 호메로스이며, 두 번재 인물은 4세기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 마지막 세 번째 인물은 그리스의 장군 에파미논다스이다.

      몽테뉴는 그의 저서인 [에세]에서 이들 세 사람을 존경하는 이유를 밝혔다. 공통점은 세 사람 모두 앎을 찬양했다는 것이다. 몽테뉴는 '알고 싶다'는 욕구야말로 인간의 본성에 뿌리를 둔 가장 강렬한 욕망이라고 생각했다. 

      지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사람들은 모든 방법을 강구한다. 그래서 인간은 이성을 이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성이 부족할 때는 경험을 활용한다고 보았다. 그는 지성의 원천으로 이성을 존중했지만, 때로는 경험으로 이성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가 생각한 가장 이상적인 '앎'은 이성과 함께 경험으로 단련된 강인한 지성이었던 것이다.

      철학사에서는 오랫동안 이성과 경험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는데, 이성과 경험을 모두 아우를 수 있다면 더 이상의 논쟁은 불필요할 것이다.

      이제 첫머리에서 소개한 몽테뉴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나는 무엇을 아는가?' 즉 '크 세주(Que sais-je)'는 끝없는 배움의 과정에서 자신을 성찰하며 스스로에게 던진 몽테뉴의 좌우명이었다.

      몽테뉴는 일찍이 법관 생활을 정리하고 온종일 책을 읽고 글을 쓰는데만 전념했다. 그는 누구보다 지성과 학식을 겸비했던 사람이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물었다고 한다. 이것은 몽테뉴가 무지와 어리석음을 깨닫고 진정한 앎을 향해 부단히 노력하는 이상적인 삶을 추구했음을 의미한다.

      어쩌면 우리사 제대로 아는 것은 하나도 없을지고 모른다. 그렇기에 인간은 늘 앎을 갈구하고 지성을 갖추기 위해 노력한다. 바로 이것이 살아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앎을 향한 노력을 멈추는 순간 이미 인간의 의미를 상실한 존재가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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