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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양 철학사 9 : 데카르트(1596~1650)
    서양철학사 2022. 1. 19.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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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카르트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수학자. 서양 근대 문명의 바탕을 이루는 합리주의 철학의 시조로 일컬어진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를 철학적 기본 원리로 삼았다. 또한 해석 기하학의 창시자로 근대 수학의 길을 열었으며, 과학자로고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

     

     

     

    방법적 회의 : 결코 의심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일까?

     

      이 세상에 절대로 의심할 수 없는 것이 과연 존재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코기토 에르고 숨(cogito ergo sum)'이라는 표현이다. 이는 근대 철학의 아버지인 르네 데카르트가 남긴 말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뜻의 라틴어다. 오늘날에는 이 문장을 '데카르트의 코기토' 혹은 '코기토'라고 줄여 부르기도 한다.

      서양철학계에 널리 알려진 이 명제는 데카르트의 핵심 사상을 표현하는 말이다. 그는 진리를 발견하기 위해 모든 것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눈앞의 책상은 정말로 존재할까? 저기 서 있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 혹시 기계가 아닐까? 지금 내가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데카르트는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꿈까지도 의심했다. 이렇듯 확고한 진리를 얻기 위한 하나의 추론 방법으로서, 철저하게 사물을 의심하는 사고방식을 '방법적 회의'라고 말한다.

      주변의 모든 것을 의심한 뒤 데카르트는 결론을 내렸다. 철저하게 모든 것을 의심한 끝에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지금 의심하고 있는 자긴, 즉 자기 자신의 의식이었다. 설령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일이 꿈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하더라도, 자신의 의식이 지금 이 일을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그러니 의심하고 있는 자신의 의식만큼은 의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종교인들이 신에게 다가가기 위해 거듭 믿고 또 믿는 것처럼, 데카르트는 진리에 다가가기 위해 의심하고 또 의심했다.

      데카르트는 결코 의심할 수 없는 자신의 의식이야말로 유일하면서도 확실한 존재하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의심하기 이전의 자신은 세상에 매몰된 상태에 놓여있지만, 철저하게 의심한 뒤에는 자신의 이식과 그 이외의 것을 분리해서 자각할 수 있다.

      이처럼 데카르트의 사고는 의식을 절대적이라고 여긴다. 이는 '나'라는 인식의 주체를 중심으로 사고하는 근대 사상의 원점이 되었다. 훗날 철학자들은 데카르트의 사고방식을 바탕으로 주체를 어떻게 확립하고 어떻게 발전시켜 나가느냐를 화두로 철학적 사고를 고양했다.

      진리를 찾기 위해 모든 것을 의심하는 데카르트의 사고 방식은 철학뿐 아니라 과학에서도 통한다. 과학적 진리를 발견하려면 작은 오류까지도 잡아내기 위해 모든 것을 철저하게 의심해야 하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테카르트의 코기토'는 오늘날 모든 학문이 참고해여 할 학문의 훌륭한 방법론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심신 이원론 : 마음과 뭄은 별개일까?

     

      마음과 몸은 서로 어떤 관계일까? 같은 것일까? 똑같지 않더라도 서로 이어져 있을까? 아니면 전혀 별개의 존재일까?

      이런 어려운 질문에 데카르트는 아주 명쾌하게 대답했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 그는 자신의 의식만큼은 결코 의심할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의식을 생각의 출발점으로 삼고, 인간의 의식에 특별한 위치를 부여한 것이다.

      그러나 의식에 특권을 부여함으로써 의식, 곧 마음 이외의 다른 부분은 마음과 완전히 다른 존재로 떨어져 나갔다. 의식을 톡별하게 대우하려면 의식과 몸을 분리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는 것이다. 이것이 수많은 논란을 제기한 '심신 이원론' 혹은 '물심 이원론'이라고 부르는 이원론의 핵심 개념이다.

      데카르트에 다르면 마음, 곧 의식은 '사고(사유)'에 해당하지만, 마음을 제외한 모든 물질(몸을 포함)은 '연장하는 실험'에 불과하다. 원래 연장이라는 단어는 시간이나 거리를 본래보다 길게 늘임을 의미한다. 하지만 철학의 세계에서는, 특히 데카르트의 철학에서는 다르게 쓰인다.

      데카르트는 '연장'을 공간 속에 위치하고, 공간의 일정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의미로 사용했다. 따라서 데카르트는 육체를 포함한 모든 물질은 기계와 같이 단순한 공간을 점유하는 '연장'의 속성을 지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데카르트의 철학에는 분명한 문제가 있다. 심신 이원론을 강조하다 보면 마음과 몸의 관련성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병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다', '건강한 정신은건강한 육체에 깃든다'와 같은 말을 들어 보았을 것이다. 언뜻 생각해봐도 몸과 마음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몸과 마음이 전혀 다른 별개의 존재라고 주장한다면, 마음이 아파서 눈물을 흘리는 현상과 같이 몸과 마음이 서로 얽힌 생리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문제점에 부딪히자 데카르트는 대안을 내놓는다.  뇌에 솔방울 모양의 솔방울샘이라는 내분비 기관이 있어서 몸과 마음을 연결해 준다는 것이다. 물론 이 주장은 훗날 생물학이 발달하면서 틀린 가설로 밝혀졌고 오늘날까지 몸과 마음의 관계는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심신 이원론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데카르트가 몸의 세계와 마음의 세계를 모두 인정하며 균형 잡힌 이원론을 전개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에는 분명 의의가 있다. 무엇보다 인간의 의식이 생각의 출발점으로 인정된 이상, 육체와 정신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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